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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해외봉사단 무전여행, 못갖춘마디 속에 숨은 행복을 찾아

    여름이면 흔히 산이나 들, 가까운 도시나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 있어 철저한 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한번쯤 옷가지 등 최소한의 준비물만 챙겨들고 무전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가진 것도 아는 사람도 없어 불안하지만 인생에서 처음부터 내 것,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있었던가. 육체의 성장이 완성되는 시기인 20대,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행이란 자양분을 먹으며 끝없이 커 갈 것이다.

    나는 지난 2011년부터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독일 루드빅스하펜Ludwigshafen 지부장으로 있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 봉사단원들과 함께 독일인들에게 한글·서예·대중문화 등 한류 문화를 전파하고, 마인드 강연 및 세미나·캠퍼스 문화공연 및 박람회 등을 통해 현지 청소년과 교류하며 올바른 마인드와 인성을 심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물론 검은머리 외국인이 독일에서 활동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지면서 한류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도 커져 ‘여러분 이름을 한글로 적어드립니다’라는 문구만 붙여놔도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설 정도다. 그렇게 사귄 독일인들과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다 보면 문화·언어·사고방식의 장벽을 넘어 어느 새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어 있다. 이는 나나 우리 단원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다.
    지난 2014년 초, 우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큰 행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행사의 이름은 코리아 캠프Korea Camp! 독일은 물론 이웃 유럽국가들의 젊은이들을 초청해 한국의 문화 및 정신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다른 문화권에서 온 학생들과도 교류하며 국제적인 이해를 도모하고, 나아가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마인드를 전하는 행사다.

     

     

    40일간의 무전여행: 돌들의 여정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3박 4일 동안 캠프를 하기로 하고, 3월 초부터 준비에 돌입했다. 마침 우리 지부에는 독일 각지로 파견된 굿뉴스코 봉사단원 15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로 홍보팀을 꾸렸다. 캠프의 취지와 프로그램 등을 설명하고, 홍보에 필요한 기본적인 독일어를 2주 정도 가르쳤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단원들은 독일 생활에 낯설어하면서도 금방 잘 적응하며 마음을 모아 캠프를 준비해 나갔다.
    그렇게 한창 캠프를 준비해 나갈 무렵, 우리는 한 가지 큰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우리가 프랑크푸르트를 개최지로 정한 것은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이자 교통과 금융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홍보팀과 함께 프랑크푸르트로 가려고 보니 그곳에는 머물 곳도 연고자도 없었다. 루드빅스하펜 지부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는 차로 1시간 거리. 매일 20여 명이나 되는 인원을 실어나르려면 차량과 운전자가 필요했지만 당장 마련할 형편이 못 되었다. 도로에서 허비할 시간도 아까웠다. 혹 프랑크푸르트와 주변 도시에 우리가 머물 만한 숙소가 있는지 부동산과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았다. 하지만 20여 명이 한꺼번에 묵을 수 있는 집은 없었고, 있다고 해도 한두 달의 짧은 기간으로는 아무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참 난감했다. 내일이면 단원들과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여 본격적으로 캠프 홍보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새벽 일찍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인생에 닥치는 어려움 앞에서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할 때면 성경에서 갈 길을 찾았다. 그리고 그 길을 따랐을 때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때부터 성경을 신뢰하게 됐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순히 사람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도를 하던 중 마음에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애굽(이집트)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이끄신 이야기였다. 당시 백성들은 수백만 명이나 되었을 텐데도 하나님이 능히 먹이고 입히고 살리셨는데, 20명 남짓한 우리들이야 못 먹이고 입히실까 싶었다.
    ‘그렇지! 하나님이면 하실 수 있지.’ 달력을 꺼내 날짜를 살펴보았다. 3월 16일! 우리는 캠프를 위해 프랑크푸르트의 어느 큰 호텔을 숙소로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다음날인 17일부터 호텔에 들어가는 날까지 남은 날을 계산해보니 신기하게도 꼭 40일이 남은 것이었다. ‘그래, 이스라엘 백성을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40년간 먹이고 입히신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인도 못하시겠나?’ 내일 당장 프랑크푸르트로 무전 배낭여행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각나는 성경이야기가 하나 더 있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무기는 물맷돌이었다. 그 돌이 생각났다. 돌은 자기가 어디로 날아가는지 몰랐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돌은 정확히 골리앗의 이마를 때려 그를 쓰러뜨렸다. 그것은 돌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윗이 그 돌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돌과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손에서 출발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는 우리가 떠날 무전여행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무전여행을 출발하는 목적은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유럽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참으로 분명하고 떳떳했다. 설령 내 앞에 골리앗 같은 큰 문제가 닥칠지라도 능히 넘어뜨리고 승리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전여행을 가자. 프랑크푸르트에서 맘껏 외치며 캠프를 알리자!’
    마음에 용기가 일어났고, 우리의 무전여행의 제목이기도 한 ‘돌들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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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못 잊을 무전여행을 위한 3가지 원칙
    그날 학생들과 미팅을 갖고 ‘내일부터 캠프 전까지 40일간 프랑크푸르트에서 무전여행을 하며 캠프를 홍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전여행의 3가지 원칙을 알려 주었다. ‘첫째, 돈을 가지고 가지 마라. 둘째, 카드도 가지고 가지 마라. 셋째, 배낭은 옷가지를 포함해 최소한으로 챙겨라.’ ‘무전여행’이라는 말을 들은 학생들의 얼굴은 대부분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찼다. 미팅이 끝난 뒤 몇몇 학생들은 조용히 나를 찾아와 물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40일씩이나 돈도 없이 숙식을 해결하고 지내는 게 가능할까요?”
    물론 나도 그 질문에 구체적인 대답은 해 줄 수 없었다. 다만 ‘우리가 가는 길에 어떤 어려움이 있든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만 이야기했다. 특수부대 출신의 어느 남학생이 근심 어린 눈빛으로 자못 진지하게 하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지부장님, 지금 우리 모습이 마치 작전에 투입되기 전의 군인들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걱정되네요.”
    다음날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내 마음에도 걱정이 올라왔다. ‘오늘은 떠나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제대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나의 어떤 의지도, 계획도 무의미했다. 그저 발길 가는 대로 내 인생을 맡겨야 하는 시간이었다. 걱정과 두려움이 올라왔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프랑크푸르트로 떠나기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독일내 다른 지역 굿뉴스코 지부장님의 전화였다. 자신이 아는 프랑크푸르트의 어느 베트남 신부님과 통화하면서 ‘프랑크푸르트에서 코리아 캠프를 열기로 했고, 이번 주부터 홍보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그랬더니 그분이 ‘특별히 갈 곳이 없으면 일단 우리 성당으로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처 없이 무조건 발걸음을 뗀 우리의 무전여행은 이렇게 출발하기 전부터 목적지가 생겼다. 성당은 프랑크푸르트 변두리에 있었다. 신부님은 성당에 딸린 부속실 몇 개와 부엌을 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비록 샤워실은 없었지만, 남자방과 여자방으로 나눠 지내면 충분할 공간이었다.
    짐을 부린 단원들은 곧바로 홍보를 시작했다. 오전에는 대학교와 청소년센터, 중고등학교에서 태권무나 부채춤을 추고 캠프 초청장을 나눠주며 홍보했고, 오후에는 시내 중심가에서 같은 방법으로 홍보했다. 저녁에는 단원들과 미팅을 가지며 초청장을 작성했다. 그날 저녁 신부님은 ‘내일 아침 성당에서 특별 새벽기도회가 있는데 참석하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도 참석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성당의 홀에서 열린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부활절을 앞두고 갖는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기도회를 하는 홀 한쪽을 보니 식탁 10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커피잔과 접시, 포크와 나이프 등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어림잡아 40여 명이 식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저 식탁, 혹시 우리를 위해 차린 것 아닐까?’ 하지만 이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성당 측에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하거나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도회를 마치고 신부님이 앞으로 나와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특별히 한국인들이 함께해 줘서 고맙다’고 하시며, 우리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했으니 맛있게 드시라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그날 아침, 우리를 위해 준비된 식탁에서 금발머리의 독일인들이 날라다 주는 커피와 빵을 먹으면서 내 마음에 생각나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광야의 식탁! 우리가 처해 있는 형편은 풀 한 포기 없이 메마른 땅만 끝없이 펼쳐진 광야와 같았다.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또 준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 우리 앞에 생각지도 못한 식탁이 준비되었던 것이다.
    참 신기했다. 처음 무전여행을 나왔을 때는 ‘우리가 어디서 잘까? 또 무엇을 먹을까?’ 하고 염려 반 근심 반으로 출발했는데, 생각하지도 기대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또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남을 돕는 사람들이 많구나.’ 마음에 힘이 생겼다.
    독일에서 4년을 지내면서 내가 보고 느낀 독일인들은 차갑고 냉정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전여행을 떠나 독일인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보니 이들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를 주저하지 않고, 피부색이 달라도 낯설어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친절을 베푸는 다정한 이웃이었다. 참 고맙고 감사했다. 무전여행을 계기로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낯설거나 차갑지 않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어 신기했다.
    다음날,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신부님도 처음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인을 20여 명이나 받아주면서 내심 ‘혈기왕성하고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이 머물면서 혹시 성당을 더럽히거나 어지럽히는 등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제집을 쓰듯 깨끗이 건물을 사용하고 청소와 정돈을 하는 우리 단원들을 보며, 그는 ‘이런 젊은이들은 처음이다’ 하고 신기해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그릴 파티를 해주겠다고 했다.
    무전여행은 가장 가까이서 서로의 삶을 지켜보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신부님과 성당측에서 먼저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도움을 주었고, 우리는 그 도움을 감사해하며 성당을 깨끗이 썼다. 마음이 오가는 동안 모두가 기쁨을 맛보았다. 신부님은 우리에게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물었다.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하자 한 주간 더 성당에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이렇게 프랑크푸르트 변두리의 성당에서 돌들의 여정의 막이 올랐다. 독일의 3월 날씨는 차가웠지만 우리 마음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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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만이라도
    걱정 대신 노래를 불러 봅시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예배당을 비워야 하는 날이 되었다. 그 전에 성당을 떠나던 날처럼 여전히 우리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마음에 용기가 올라왔다. 항상 길이 없어 보였지만 막상 부딪혀보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부딪혀 보자’는 마음이 일어났다. 매번 부딪힐 때마다 신기하게도 그때 그때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노라면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 하나씩 맞아들어가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날 아침, 봉사단원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했다.
    “오늘 우리는 이 건물을 비워줘야 합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지난 여정을 돌이켜보면 용기를 갖고 부딪혔을 때 길이 열리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길이 열릴 것을 믿고 노래를 불러 봅시다.”
    그날도 단원들이 캠프 홍보를 다니는 동안 우리 지부장들은 숙소를 구하러 시내를 돌아다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거절만 신나게 당하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근심이 올라왔다. 하지만 ‘오늘은 노래하자’는 마음이 들어 함께 있는 지부장님과 노래를 불렀다. 어려움과 걱정거리가 없는 게 아닌데도 노래를 부르며 여유를 갖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날 저녁 늦게 우리는 새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어느 지부장님이 집에서 해 온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으며 봉사단원 학생들에게 물었다. ‘오늘 하루 노래를 불렀느냐?’고. 그러자 단원들도 다들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어떤 학생은 <강남 스타일>의 가사를 바꿔 ‘우리는 봉사단 스타일, 갈 데까지 가 볼까’ 하고 노래를 불렀단다. 너무도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 좋은 음식을 사먹고 멋진 경치를 봐도 가질 수 없는 기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40일을 보냈다. 독일 사람들은 모든 것을 미리 철저히 계획한 채 삶을 산다. 조금이라도 그 계획에서 벗어나면 당황하거나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독일인의 눈에 비친 우리는 아주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아무 계획도, 가진 것도 없어 순간순간 어려움에 대처해 나가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며 신기해 했다. 그렇게 보낸 40일은 우리에게도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가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을 보며 점점 마음이 담대해져 갔다.

     

    글과 사진 | 오영신 & 굿뉴스코 유럽 해외봉사단   진행 | 김성훈 기자   디자인 | 김진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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